콜라전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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분류
콜라전투 Kollaan taistelu | ||
겨울전쟁의 일부 | ||
장소 | ||
핀란드 카렐리야 라도가 콜라 강 | ||
교전국 | ||
지휘관 | ||
병력 | ||
1개 사단 | 4개 사단, 1개 전차여단 | |
결과 | ||
핀란드군의 승리 | ||
영향 | ||
붉은 군대의 진격 저지 | ||
피해규모 | ||
1,500 여명 사상 | 8,000 여명 사상 | |
1. 개요 [편집]
콜라 전투(핀란드어: Kollaan taistelu)는 겨울전쟁의 한 전투로 1939년 12월 7일에서 1940년 3월 13일까지 핀란드 카렐리야 라도가 콜라 강에서 진행되었다.
2. 상세 [편집]
핀란드 제12사단은 소련 붉은 군대에 비해 훨씬 열세의 병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붉은 군대를 격퇴하는 데 성공했는데, 이는 콜라 지역에 도로가 매우 적었으며 그나마 있는 도로도 모두 핀란드군이 점거했기 때문이다. 소련군은 스키를 동원하지 않으면 일대를 주파할 수조차 없었다.
콜라는 겨울 전쟁 당시 핀란드 입장에서 가장 방어하기 어려웠던 곳들 중 하나로 꼽힌다. 붉은 군대는 핀란드 방어선을 향해 하루 평균 40,000여 발의 대포를 쏘아대지만 이에 반해 핀란드군은 하루에 1000여발의 대응포격을 하였다.
핀란드 제12사단이 붉은 군대의 진격을 저지시켰지만 양측 모두 큰 피해를 입었고, 콜라 전투는 교착상태에 빠진 채 겨울 전쟁이 종전될 때까지 계속되었다. 붉은 군대는 여러 차례에 걸쳐 핀란드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때마다 핀란드군은 조직적 반격으로 방어선을 회복했다. 1940년 3월 12일, 소련군은 다시 한번 핀란드 방어선을 돌파하여 핀란드군 쪽으로 깊이 0.5~1.5 킬로미터에 달하는 돌파구를 마련했다. 이에 핀란드 제12사단 측은 콜라 방면을 포기할 것을 고려했으나 곧 상황이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다는 판단하에 다음날 재반격할 것을 명령했다. 그러나 전쟁 자체를 정전하기 위한 평화 회담이 진행된다는 소식에 이 명령은 기각되었고, 전쟁 종료 시점까지 핀란드군은 현 위치를 고수했다.
콜라는 겨울 전쟁 당시 핀란드 입장에서 가장 방어하기 어려웠던 곳들 중 하나로 꼽힌다. 붉은 군대는 핀란드 방어선을 향해 하루 평균 40,000여 발의 대포를 쏘아대지만 이에 반해 핀란드군은 하루에 1000여발의 대응포격을 하였다.
핀란드 제12사단이 붉은 군대의 진격을 저지시켰지만 양측 모두 큰 피해를 입었고, 콜라 전투는 교착상태에 빠진 채 겨울 전쟁이 종전될 때까지 계속되었다. 붉은 군대는 여러 차례에 걸쳐 핀란드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때마다 핀란드군은 조직적 반격으로 방어선을 회복했다. 1940년 3월 12일, 소련군은 다시 한번 핀란드 방어선을 돌파하여 핀란드군 쪽으로 깊이 0.5~1.5 킬로미터에 달하는 돌파구를 마련했다. 이에 핀란드 제12사단 측은 콜라 방면을 포기할 것을 고려했으나 곧 상황이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다는 판단하에 다음날 재반격할 것을 명령했다. 그러나 전쟁 자체를 정전하기 위한 평화 회담이 진행된다는 소식에 이 명령은 기각되었고, 전쟁 종료 시점까지 핀란드군은 현 위치를 고수했다.
3. 여담 [편집]
- 핀란드군 볼데마르 해글룬드 소장이 아르네 유틸라이넨 중위에게 “콜라는 지켜지는가?”라고 묻자 유틸라이넨 중위는 “콜라는 지켜집니다. 탈주 명령이 내려지지만 않는다면!”이라 대답했다 한다.
- 전설적인 저격수 시모 해위해가 이 전선에서 복무했다.
4. 외부 링크 [편집]
[1] 콜라 전투의 핀란드측 지휘관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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